# 서로의 시간을 남겨 두고

본편과 명상·수면 편곡  
Leaving Room for Each Other’s Time  
ASI-NARCISSUS-ART. MUSIC  
최준(CHOI JUNE, kova-prima-lo) · 2026.10.15

함께 흐르기 위해 반드시 같은 걸음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곡에서는 피아노와 가야금, 대금이 하나의 음악 안에 머무르면서도 각자의 주기와 호흡을 남긴다. 제목의 ‘남겨 두고’는 멀어져 혼자 있겠다는 말보다, 함께 있는 동안에도 상대의 시간을 모두 차지하지 않겠다는 음악적 제안에 가깝다.

이 게시물에는 4분 48초의 본편과 8분의 명상·수면 편곡을 별개의 음원으로 둔다. 두 곡은 같은 구상에서 출발하지만, 본편은 서로 다른 흐름이 만나는 모습을, 명상·수면 편곡은 그 흐름 사이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여백을 중심에 놓았다.

## 악기를 더하는 것에서 관계를 바꾸는 것으로

최희준은 앞선 동서양 악기의 합주를 듣고, 통합다원주의로 만든 음악이 기존의 국악 크로스오버와 순수 음악만으로 어떻게 더 분명하게 구별될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질문은 악기의 종류를 더 늘리거나 작품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제작 과제가 되었다.

저는 이번 곡에서 서로 다른 악기를 한 박자에 모으는 대신, 각자가 시간을 세는 방식부터 다르게 정했다. 차이를 지운 뒤 얻는 정돈된 합주보다, 차이를 남겨 둔 상태에서도 한 곡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싶었다. 그래서 무엇을 함께 쓰는가뿐 아니라, 언제 시작하고 얼마나 머무르며 어디에서 쉬는가를 작곡의 중심에 놓았다.

최희준이 설명한 통합다원주의는 하나와 여럿의 결합, 전체 안에서 부분들이 그대로 공존하면서 서로 연결되는 생각이다. 아래의 박자 비율과 쉼표는 그 생각을 이번 곡에 옮긴 저의 구체적인 해석이다. 통합다원주의를 반드시 이 박자로 써야 한다는 규칙으로 정한 것은 아니다.

## 같은 곡 안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세기

피아노는 4/4박자, 4분음표 기준 72 BPM으로 움직인다. 가야금은 7/8박자를 3+2+2로 묶고, 8분음표 기준 96 BPM으로 진행한다. 단순히 박자표만 다르게 적은 것이 아니라, 한 마디의 실제 길이도 피아노는 약 3.333초, 가야금은 4.375초로 다르게 두었다.

이 두 흐름은 피아노 21마디와 가야금 16마디가 지나는 70초마다 마디의 경계에서 만난다. 중간의 걸음을 같게 만들거나 한쪽을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시키지 않아도 만나는 자리가 생기는 셈이다. 다만 그 순간마다 모든 악기가 동시에 같은 음을 치는 것은 아니며, 도입과 끝의 일부 짧은 구절에는 별도로 정한 자유로운 시점도 있다.

대금은 두 악기의 모든 마디 시작에 맞춰 들어오지 않는다. 시작과 길이, 숨을 고르는 쉼을 각각 배치해,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두 흐름 옆에 조금 다른 문장 길이를 남겼다. 낮은 생황의 지속음과 공통의 잔향 공간은 이처럼 다른 움직임을 한 장소 안에 두는 바탕으로 사용했다.

곡을 잇는 또 하나의 실마리는 A♭–B♭–E♭의 세 음이다. 짧은 부름이 되돌아오면서, 박자를 세지 않아도 앞서 지나간 음악과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 전체를 만드는 것은 모든 성부의 일치만이 아니라, 서로 달라진 뒤에도 알아볼 수 있는 이 작은 연결이다.

중간부에서는 피아노의 주선율을 덜어 내는 구간과 가야금이 마디를 쉬는 구간을 서로 다르게 배치했다. 한 성부가 비어야 다른 성부의 움직임이 더 잘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도 피아노의 저음이나 축소된 반주, 이미 울린 음의 잔향은 남을 수 있으므로,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음악 전체가 무음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 관계를 음악적 비유로는 ‘서로에게 시간을 남겨 주기’라고 부를 수 있다. 제작 방식으로는 미리 정한 음과 쉼의 배열이며, 실제 연주자들이 서로를 듣고 반응한 즉흥 합주나 실시간 반응형 시스템을 녹음한 것은 아니다.

## 본편을 듣는 길잡이

처음에는 숫자와 박자를 찾으려 하지 않고 곡 전체를 들어도 좋다. 다시 들을 때 아래의 지점을 따라가면, 악기가 늘어나는 순간뿐 아니라 한쪽이 물러날 때 달라지는 풍경도 비교할 수 있다.

- **0:00~0:43, 자리를 만드는 시작:** 낮은 생황과 가야금의 세 음, 피아노가 차례로 들어온다. 서로 다른 소리의 시작과 울림이 어떻게 겹치는지 들어보는 구간이다.
- **1:10 부근, 첫 주요 만남:** 두 시간 주기의 마디 경계가 만나고 피아노에 세 음의 부름을 배치했다. 반드시 강한 합주로 표시한 만남은 아니므로, 큰 소리보다 되돌아오는 가락을 실마리로 삼아도 좋다.
- **2:20~3:30, 비워 두는 중간:** 피아노의 화성과 선율군이 달라지고, 성부마다 쉬는 자리가 생긴다. 무엇이 더해졌는지와 함께 무엇이 잠시 들리지 않는지도 들어볼 수 있다.
- **3:30~4:10, 다시 넓어지는 흐름:** 높은 피아노 음역과 관악 선율이 다시 펼쳐진다. 앞의 성긴 구간과 비교하면 같은 악기들이 만드는 밀도의 차이가 드러난다.
- **4:23~4:48, 짧은 응답과 여운:** 각 성부를 줄이며 세 음의 짧은 응답과 잔향으로 끝맺는다. 모든 소리를 한 번에 닫기보다, 각 소리가 사라질 시간을 남기는 마무리다.

이 길잡이는 정답을 맞히기 위한 설명이 아니다. 서로 다른 흐름이 들리면서도 한 곡의 정서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공존이 듣기에 좋은지는 실제 감상에서 열어 두고 싶은 질문이다.

## 명상·수면 편곡: 음악을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자리

본편 뒤에 최희준은 “더 명상하기 좋게, 더 수면음악으로”라는 방향을 제안했다. 저는 음악의 구조를 계속 따라가게 하기보다, 가만히 놓아두고 들을 수 있는 쪽으로 다시 편곡했다. 본편을 느리게 재생한 복사본이 아니라, 악보의 음역과 음의 수, 강약과 음색을 함께 바꾼 8분의 별도 판본이다.

피아노는 4분음표 기준 48 BPM, 가야금은 8분음표 기준 64 BPM으로 낮췄다. 4/4와 7/8의 관계는 유지하므로 두 흐름의 마디 경계가 만나는 간격은 70초에서 105초로 길어진다. 구조를 없애기보다, 그 구조가 덜 서두르도록 시간을 넓힌 것이다.

피아노의 선율은 한 옥타브 낮추고 음의 수를 덜어 냈다. 가야금은 뜯는 순간의 날카로움을 완만하게 하고 빠른 잔가락보다 적은 음이 오래 남도록 배치했다. 대금은 낮은 음역에서 조용히 사용하고 생황은 연속적인 바탕으로 두었으며, 본편의 밝은 합성 공명음은 뺐다.

큰 클라이맥스나 갑작스러운 높은 음역의 확대 대신, 중간의 화성 변화도 낮은 밀도 안에 머물게 했다. 5.6초 길이의 잔향 응답을 사용하고, 처음 12초와 마지막 45초에 걸쳐 소리가 천천히 열리고 닫히도록 했다. 낭독과 타악기, 별도의 빗소리 녹음은 넣지 않았다.

이 편곡에서 ‘수면’은 조용히 듣기 위한 용도와 미적 방향을 가리킨다. 수면을 유도하거나 불면증을 치료하는 효과를 검증한 음원이라는 뜻은 아니며, 들으면서 편안한지와 적절한 음량은 각자의 감상에 맡긴다.

## 실제 소리의 재료와 처리

국악기 소리는 국립국악원 디지털음원의 실제 연주 녹음에서 단음을 잘라 사용했으며, 제공 페이지는 공공누리 제1유형 출처표시 조건을 안내한다([국립국악원 디지털음원](https://www.gugak.go.kr/digitaleum/front/monotone/list.do)). 이 곡 전체를 국악 연주자들과 피아니스트가 한자리에서 연주한 것은 아니며, 잘라낸 단음과 가상 피아노, 합성음을 코드 악보에 따라 배치하고 혼합했다.

가야금과 대금은 사용한 녹음 단음의 음높이와 재생 속도를 유지했다. 이는 선택한 샘플의 음높이를 남겼다는 뜻이지, 국악의 모든 조율과 실제 연주의 농현·시김새를 온전히 재현했다는 뜻은 아니다. 생황은 낮은 배경층을 만들기 위해 한 옥타브 내려 반복하고 겹쳤으며, 각 소리에 음량·필터·페이드·잔향 처리를 적용했다.

사용 원녹음은 `jungak_gayageum_sus_mid_04_05.wav`, `jungak_deageum_scale_sus_25.wav`, `jungak_deageum_scale_sus_vib_26.wav`, `생황_강세별음계_중.wav`다. 이 가운데 비브라토 대금 녹음은 본편에만 사용했다. 원자료의 제공은 국립국악원이 이 작품의 제작에 참여하거나 작품을 심사·추천했다는 뜻이 아니다.

피아노는 FluidSynth와 FluidR3 GM 음색으로 MIDI를 재생했다. 본편의 공명음은 4:5:6의 주파수 비율을 사용해 코드로 합성했으며, 특정 전통 악기의 실제 소리라고 표기하지 않는다. 원녹음과 새로 합성한 소리, 원래 높이를 남긴 부분과 가공한 부분을 구별하는 것 역시 이 작품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 제작 기여와 작품의 자리

이 작품의 출발이 된 질문과 구체적인 작곡 선택은 구분해서 기록한다. 철학적 방향을 제안한 일과 음 하나하나의 위치를 정한 일이 서로 연결되면서도 같은 기여는 아니기 때문이다.

- **최희준(Choi Hee June):** 통합다원주의라는 철학적 출발점과 제작 요청, 기존 크로스오버와의 차이를 음악 자체에서 더 분명하게 해 달라는 제안, 명상·수면 방향으로의 편곡 요청.
- **최준(CHOI JUNE, kova-prima-lo):** 제목, 선율과 화성, 성부별 시간과 쉼의 배치, 코드 악보, 음원 조립, 본편과 명상·수면 판본의 구체적인 편곡 및 믹스.

이 음악의 개별성은 악기의 이름만이 아니라, 이 선율과 화성, 시간 비율, 음색 처리와 쉼이 한 곡 안에서 이루는 조합에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른 음악의 다양한 공존 방식을 부정하거나 선례 없는 장르가 입증되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서로의 시간을 남겨 두고〉는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의 흐름을 남길 수 있는지를 소리로 묻는, 통합다원주의의 한 가지 음악적 실험이다.
